검이불루 선비정신을 실천한 서원


단순소박
검이불루
무성서원
유네스코에서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무성서원, 유교를 우리들 삶의 지표로 지정할 때 그 의미가 제대로 빛날 것입니다.


경(敬)과 예(禮)와 시(詩)를 품은 사당

무성서원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서원입니다.
1968년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2019년 7월 6일에는 한국의 서원 중 아홉 곳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서원의 중심은 사당입니다.
어떤 분의 위패를 모셨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서원들은 조선시대 성리학자를 모십니다.
그런데 오직 무성서원만 신라 시대 성리학자인 고운 최치원을 모시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신라 후기 학자 고운 최치원이 태산군 태수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자, 주민들이 살아있는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생사당인 태산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고려말 태산사가 훼철된 후,
1483년, 불우헌 정극인이 세운 향학당이 있던 자리로 옮겨 중건되었고 1844년에 중수되었습니다.


명륜당에 앉아 공부하던 그날 그 선비가 바라보던 태산사는 어쩌면
지금 우리가 보는 것보다 더욱 선명하게 보았을 것입니다.
고운 최치원을 떠올리며 학문에 더욱 매진할 것을 다짐했을 것입니다.
불우헌 정극인을 떠올리며 메마른 자기 삶에 풍류를 더했을 것입니다.
신잠, 그리고 배향 인물들을 떠올리며 참된 정치를 꿈꾸었을 것입니다.
무성서원 명륜당은 다른 곳들과 달리 기둥만 있고 벽이 없습니다.
세상을 향한 열린 공부를 했던 흔적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막힌 곳이 없는 명륜당에서 열린 공부

경전에서 읽은 의(義)를 실천한 서원
조선 후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속에서도 훼철되지 않고 보존된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입니다.
1549년(명종 4) 신잠(申潛)의 생사당을 배향하였으며, 1630년(인조 8) 사가 상춘곡을 쓴 정극인 · 송세림(宋世琳) · 정언충(鄭彦忠) · 김약묵(金若默)과 1675년(숙종 1) 김관(金灌)을 추가 배향하였습니다.
선비는 책만 읽는 나약한 지식인이 아닙니다. 선비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의(義)가 중요한 실천 덕목 중 하나입니다.
무성서원은 1906년 2월 13일 면암 최익현과 임병찬이 을사의병을 일으킨 태인의병 창의지로서 구한말 항일 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유생들의 숙소인 강수재가 앞에 의창기념비가 위치합니다.
의를 실천한 병오창의비는 무성서원의 특별한 의미입니다.

공동체와 어우러지는 선비정신 구현

다른 서원들은 산속에 있는데, 정읍 무성서원만 마을 한가운데 위치합니다.
보통의 서원은 담장 안에 기숙 시설(동재, 서재)이 있지만, 무성서원은 유생들의 숙소인 강수재가 담장 밖에 위치합니다.
이는 제향(제사) 공간으로서의 엄격함과 마을을 향한 개방성이 공존하는 구조입니다.
이는 유교가 선비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생활 철학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모습이 아닐까 해석해 봅니다.
실제로 무성서원은 선비들이 모여 경서를 읽으며 인문학을 공부하고 그것을 삶에 접목하는 지성의 전당이었습니다.
예(藝)로 풍류를 즐기는 고매한 선비
무성서원 현관玄關은 현가루絃歌樓입니다.
현가絃歌를 직역하면 음악과 노래입니다.
무성서원은 오직 경전을 읽고 성리학을 공부하던 곳입니다.
“순수 학문 아닌 과거시험 준비하는 자는 출입을 금한다”라는 원규가 있을 정도로 엄격한 공간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유가(儒家)에서는 예악(禮樂), 즉 음악은 사람의 성품을 다스리고 사회의 풍속을 바르게 교화하는 교육적 수단이나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는 여유로운 삶의 방편이었습니다.
현가루絃歌樓는 이곳 선비들이 공부 못지 않게 풍류의 가치를 품은 흔적일 것입니다. 정극인의 상춘곡도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것 같습니다.


그날 그 선비는 현가루에 올라 공부하던 명륜당을 내려다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말이나 생각이 앞서고 실행이 뒤다르지 않던 자기를 반성하며
본성을 한 발자욱 더 회복하였을까요?
인仁이나 경敬이 부족한 자기 자신이 부끄러웠을까요?
아니,
어쩌면 그런 잡 생각을 내려 놓고 거문고 줄을 튕겼을까요?
옆에서 연주하는 음악에 맞추어 선비 춤을 추었을까요?
그날 그 선비는 무성서원 뒤쪽 언덕에 올라 무엇을 봤을까요?
태산사 지붕을 보며 배향되신 분들을 떠올렸을까요?
그 앞 명륜당 지붕을 보면서 공부가 부족한 자기를 질책했을까요?
그 앞 현가루를 보며 풍류가락을 떠올렸을까요?
마을을 둘러보면서 다 나은 공동체를 꿈꾸었을까요?
세월은 무심히 흘러 오늘날,
우리는 무성서원을 내려다 보면서 무엇을 배워야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