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식은 왜 하는가?
예식장에서 예법은 지키는가?
주례는 예법을 주관하는가?
주례사만 신경 쓰다가 세상에서 외면당하지 않았는가?
신랑신부가 주인공이지만
예식의 주축은 주례다.
아, 축(쇠촉)이 없이 화려하게 도는 팽이여!

한 우주와 한 우주가 만나는 우주적인 사건
두 영혼의 결합, 이것이 결혼이다.
예식은 재밌는 이벤트가 아닌,
엄숙하고 경건하게 진행할 의식이다.
혼인의식을 치르는 곳을 우리는 예식장이라고 한다. 혼례식은 예법에 근거한 의식이기 때문이다. 예법에는 남녀의 자리가 정해져 있다. 음양 사상이 그 바탕이다. 음양 사상은 우주의 순리가 근본이다. 해 뜨는 쪽이 양이고 지는 쪽이 음이다. 남동여서(男東女西)가 기본이다. 예식장에서는 상석인 주례 자리가 북쪽이다. 신부는 오른손으로 남자인 아버지의 왼손을 잡고 입장한다. 이건 예법에 따른 바른 위치다.
문제는 신부의 손이 아버지로부터 신랑의 손에 넘겨질 때 생긴다. 신부는 왼손에 든 꽃다발을 오른손으로 바꾸어 든다. 그리고 왼손으로 신랑의 오른손을 잡는다. 그렇게 주례 앞에 서니 남동여서(男東女西)가 바뀌어 여동남서(女東男西)로 된다. 이는 요즘 예식장에서 너무나 흔히 보는 모습이다. 이를 문제 삼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그런데 예법에 여동남서는 죽은 사람의 자리다. 바로 묫자리 위치다. 이를 무시한 예식장에서는 죽은 신랑 신부가 혼례를 치르는 셈이다. 이 어찌 통탄할 무례가 아니겠는가? 아니, 예법에 따르면 그렇다는 것이다. 예식이니까!
신랑 신부의 위치에 따라서 나머지가 줄줄이 뒤바뀐다. 예식장에 세우는 촛대 역시 뒤바뀐 상태다. 예법에 홍색은 양이오, 청색은 음이다. 그런데 남자의 상징인 붉은 초가 서쪽에, 여자의 상징인 파란 초가 동쪽에 세워진다. 이러니 점촉할 때 신부 어머니가 신랑 어머니의 우측에서 입장하는 결례가 발생한다. 좌석 또한 동쪽에 신부의 부모가, 서쪽에 신랑의 부모가 앉는다. 이것들이 다 엉터리 예식장의 자리 배치다. 부부로서 첫 출발이 이렇게 예법에 어긋난 상태여도 정말 괜찮은가?
당사자들은 몰라서 그런다 해도 명색이 전문업체인 예식장이 이래도 되는가? 편의성과 잘못된 관례 때문에, 틀린 자리를 예식장이 배치해도 혼주는 제자리를 되찾아야 한다. 특히 예식의 주관자인 주례는 이 무례를 교정해야 마땅하다. 안타깝게도 이를 바로잡아 주는 어른이 거의 없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우리 절의 기본은 손을 모으는 공수(拱手)다. 식순에 신랑 신부 맞절과 부모님 그리고 내빈께 인사가 있다. 이때 손을 모아 배에 대고 절을 하면 보기에도 훨씬 더 공손한 느낌을 준다.

요즘 주례 없는 혼례식이 번지고 있다. 혼인의 주인공은 신랑 신부지만 혼례의식의 큰 어른은 주례다. 이 자리를 비워둔 혼례식은 어른을 무시하는 집안임을 드러내는 꼴이 아닐까? 이를 신 풍속도로 받아들여야 할지 매우 의문스럽다. 주례는 결코 들러리가 아니다. 장황한 금과옥조 주례사로 언변을 뽐내는 자리도 아니다. 주례는 분명하게 혼인서약을 집례하고, 만천하에 성혼선언을 하는 예식의 중심이다. 주례는 예법에 밝고 혼례식의 의미를 잘 아는 분이 맡아야 한다. 원만한 부부생활의 모범을 보이는 어른이면 더 좋다. 그리고 후손을 아들, 딸, 손자, 손녀 두루 둔 분이 바람직하다. 사회적 신분은 부수적으로 고려할 일 뿐이다.
새 부부가 탄생하는 혼인의식은 경건하고 거룩하게 진행할 예식이다. 혼주의 세과시를 위한 행사가 아니다.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화려한 쇼도 아니다. 웨딩드레스 입고 폼 잡으며 멋있게 시종일관 박수로 진행할 이벤트는 더욱 아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항시’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진실된 배우자로서 도리를 다 한다”는 참으로 어마어마한 ‘혼인서약을 하는 의식’이다. 혼인서약이 혼례식의 핵심이다. 멋져도, 길게 꾸며진 예식은 내빈들의 시간을 뺏는 결례일 수 있다.
사회자는 예식을 재밌게 진행하는 MC가 아니다. 혼례의 품격을 경박하게 낮추는 무례는 제발 범하지 말아야 한다. 혼인은 장난이 아니다. 한 우주와 한 우주가 만나 더 크고 완성된 우주로 거듭나는 경이로운 경험이다. 사실, 부부생활은 ‘어떠한 경우라도 항시’ 라는 혼인서약을 지켜나갈 매우 수준 높은 수행이기도 하다. 아마도 혼례식장은 축하나 박수보다 격려가 더 필요한 자리라고 여겨진다.
우리의 선비들이 가슴의 바닥에 새겼던 삶의 좌우명은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이다. 근본이 바로 서야 한 사람이, 한 가정이, 한 국가가 제대로 존립할 수 있다. 체면이나 돈이 정말 최고의 가치인가? 예는 형식이 아니라 정신이다. 근본과 순리에 바탕을 둔 삶의 철학이다. 이를 무시하고 간과해 버린 결과, 오늘날 가정들이 쉽게 흔들리는 것은 아닐까? ‘어른을 찾기 어려운 세상이다.’ ‘원칙과 정의가 무너졌다.’ ‘비정상이 정상인 세상이다.’ 이런 걱정하는 분들이 있다. 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 할까? 근본을 모르는 어떤 이가 이 글을 보면 아마 이럴 것이다.
“뭘 그렇게 꼬장꼬장 따지고 그래? 그냥 남들 하는 대로 해.”
근본이 바로 서야 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